달콤한 슈크림같은 머리와 풍성한 속눈썹 아래 유순하게 빛나는 옅은 푸른 눈. 볼에는 점이 두개 있다. 어느 하나 모난 구석 없이 느린 동작은 긴 팔다리로 인해 우아해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그답게 고장난 라디오처럼 멍하니 서있다가도 감전된 것마냥 호들갑을 떨 때가 많았다. 그야말로 자기만의 세상이 있는 산만하기 짝이 없는 아이다. 커다란 리본머리띠를 제외하면 그가 제 몸에 꾸민 것은 온갖 보호구들 뿐이다. 잔잔하고 습기있는 목소리, 곳곳에 묻어나는 잉크 냄새, 펜대와 피아노로 인한 굳은살까지. 그가 무엇에 몰두했는지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기타사항
찬연한 방주의 이름, 이름하야 슈레이메나! : : 설립된 지 113년이 된 공익재단법인으로, 현재는 설립자의 손자인 슈레이 친요(守礼 陳余)가 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예술 분야 전반을 지원하는 장학사업을 추진하며 연구지원 또한 아끼지 않는다. 그들의 수혜자는 주로 고아원의 아이들이며, 그 중에서도 두각을 드러낸 인재들만이 재단의 혜택과 전폭적인 지원을 받게 된다. 유감스럽게도 이 은혜로운 방주에는 단 하나의 저주가 있었는데… ㅡ “쉿, ‘아스클레피오스의 그림자’가 너를 잡아먹을테야!”
딛고 일어날 수 없는 운명, 아스클레피오스의 그림자 : : 슈레이메나 재단이 유명한 이유는 그들의 귀한 고치들은 나비가 되어 화려한 날개를 펼치자마자 바스라지기 때문이다. ‘슈레이메나의 아이들은 반드시 세기의 유작을 남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들의 인재는 단명하기로 유명하며, 더 유명한 것은 죽음 뒤 공개되는 걸작들이다. 그림, 영화, 소설, 시… 역사의 반열에 오를 작품들의 어린 주인들은 모두 없다.
100년을 기념할 샹들리에, 찬사 속의 빛의 귀인 : : 슈레이메나가 설립된 지 딱 100년이 되던 해에 태어난 아이, 글자보다 음표를 먼저 뗀 아이, 흐림없이 맑기만 한 인생의… ‘노노카에와’! 7살이 되던 무렵, 삐뚤빼뚤한 음표가 SNS를 통해 세상에 나타나자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나같이 충격적으로 신선했고 구성이 독특하여 이목을 집중시켰으니, 그가 그 해 ‘슈레이메나’가 된 것은 이례적이지도 않았다. 주어진 환경도 그러했지만 축복받은 재능이 있었으니, 행운이 뒤따르는 행운아라 할 수 있으리라. : 그런 그가 재단에 소속되면서부터 쓰기 시작한 곡이 ‘위령미사곡’임이 추측되자 불손한 이야기는 기정사실화되어 떠돌았다. 재단조차 그가 음악과를 가리라 믿어의심치 않았다. ㅡ “어머, 저게 노노카에와의 유작인가봐!”
안단테에스프레시보, 나비를 꿈꾸는 나방 : : 이 어린 고치는 하나에 꽂히면 밑도 끝도 없이 파고드는 탓에 주의력결핍이 의심될 정도로 산만했다. 그럼에도 흥미만 있으면 누구든 무서워 건드리지도 못할 광인의 모습으로 몇날며칠 밤을 새는 일도 허다했는데, 의외로 피곤한 기색이라곤 보이지 않아 매우 건강해보인다. : 오로지 작곡에만 매달린 탓인지 여러모로 상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질문도 덩달아 많아졌다. 입버릇처럼 제 행운을 나눠준다 조잘거리니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변화무쌍 시시각각 옮겨가는 관심에 다정함과 무심함이 섞여 변덕이 죽끓듯 해보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지는 특징이 있었는데, 기이할 정도로 집착스러운 안전민감증과 빛에 대한 강박이다. : 그의 건강염려증은 모두 짐작하는 바가 있었다. 재단은 몇년이 지나도록 완성되지 않은 ‘위령미사곡’을 위해서라면 운동장에 잔디를 깔고 학원의 모든 모서리는 둥글게 갈아버릴 위인들이었으니까. 그러니 자연히 교육받은 그 또한 안전에는 특히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몸에 좋다는건 모두 먹고 바르곤 한다. : 빛을 향한 강박은 앞서 언급한 안전민감증에는 비교할 수 없을만큼 심했다. 그는 그림자로 걷지 않았으며, 불이 켜지지 않는 곳은 근처에 얼씬도 않았다. 입학한 이후 잠들기 전 불을 껐단 이유로 창문으로 뛰어내린 이후로는 각종 무드등과 랜턴, 손전등 등을 선물받았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