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구불진 달콤한 슈크림 같은 백금색 머리와 풍성한 속눈썹 아래 유순하게 빛나는 옅은 푸른 눈이 있다. 집중할 적에는 홍채를 둘러 흰빛이 띠를 이뤘는데,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다. 볼에는 점이 두 개 있다. 어느 하나 모난 구석 없이 느린 동작은 긴 팔다리로 인해 우아해 보이기까지 한다. 선뜻 먼저 다가가는 일이 드무나 거리를 좁히면 달콤한 향수 냄새 사이에는 항상 희미한 약 냄새가 풍겼다. 잔잔하고 습기 있는 목소리, 곳곳에 묻어나는 잉크 냄새, 펜대와 피아노로 인한 굳은살까지. 그가 무엇에 몰두했는지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이제 손에는 항상 얇고 하얀 장갑을 착용하니 그 굳은살은 더 볼 일을 없을 것이다. 키와 몸집이 줄었다. 제 입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학교 생활
: 중등부 이후 현재 고등부까지 건강 악화를 걷잡을 수 없게 되어 처음에는 하루 이틀 쉬던 것이 몇 주가 되더니 이윽고 몇 달에 이르렀다. 중등부는 그나마 학기의 반은 모습을 드러냈으나, 고등부에 오르고 나서는 유급을 간신히 면할 정도의 출석 일수만을 채워 겨우 진학하였다.
: 그가 ‘아이돌과’에 진학한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었으나, 그가 제멋대로 굴던 기인이었기에 이 웅성거림도 금세 잦아들었다. 그저 그의 변덕이겠거니 여기는 이들이 많았으며, 그보다는 오히려 그의 유작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가십거리가 되었다. 현재까지도 ‘마지막 한 장’에 대해서는 불가사의로 여겨지고 있다.
: 현재까지 단 한 번도 무대에 선 일이 없다. 적게는 2인, 많게는 5~6인이 되는 유닛에까지 든 적이 있었으나 사고나 전학이 잇따라 활동이 무산되곤 했다. 그가 작년 2학년 시절 킹덤컴에 가입했을 때조차 무대에 서질 않았다. … 아니, 못했다. 그 즈음엔 키라메키에서 거의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 슈레이메나 재단 시설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병문안은 정중히 거절하였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 아키라에게 승마를 배웠다. … 잘되지 않았지만. 머리 장식 아래는 검은 핀으로 늘 고정했고, 랜턴과 유리 펜은 항상 사용했다. 마미에게 연기를 배우고, 카즈미에게 환심을 사는 태도를 배웠다. 들쭉날쭉한 등교에 자주 뭔가를 잊었다. 거짓말은 매우 능숙했으며 망설임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덕분에 엉성하긴 한지라, 있지도 않았던 얘길 꺼내면 금세 ‘아참, 그랬지.’하고 맞장구를 칠 것이다.
🌟기타사항
새 사공을 맞이한 방주, 슈레이메나 : : 굳건한 위용을 자랑하던 재단은 작년에 슈레이 친요가 병환으로 쓰러진 이후 그의 아들, 슈레이 신진(守礼 心真)이 자리를 이어받게 되었다. 그는 지난 5~6년간, 재단 내에서 일어난 ‘찝찝한 연쇄 사고’들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ㅡ슈레이메나 탄타니, 11세, 가출. 슈레이메나 카타후치, 15세, 낙마 사고. 슈레이메나 에렌, 17세, 피해망상… .) : 작년까지 키라메키에는 고등부에도 한 명의 슈레이메나가 더 있었으나, 이른바 ‘재단의 저주’ 탓인지 그 또한 병을 얻어 사망하여 고등부에는 유일한 슈레이메나로 노노카에와만이 존재했다.
허물 속의 나방, 노노카에와 : : 그의 등교 일수가 형편없는 것치고는 그의 기행에 비해 평가는 대단히 좋은 편이다. 착하고 친절하고 상냥했으며, 무엇보다 그 어떤 부탁이든 들어줬다. (가끔 그 방식은 옳지 못하거나 바라지 않던 방식인 경우도 있지만 소수인데 어떠랴!) 아이토에게 받은 구식 휴대폰은 버튼도 고장난 채로 사용도 미숙해 답장이 느렸지만, 어쨌든 그의 교우관계는 큰 탈은 없어 보인다. 그러니 그가 킹덤컴에 소속되기 전에 무산된 유닛 문제들은 불행한 우연으로 치부되는 것도 당연했다. ㅡ”내 행운을 나눠줄게.” : 빛과 건강에 집착하는 일은 더 심해질 수도 없을 줄 알았건만 더 심각해졌다. 모두에게 똑같이 배식이 되는 급식은 먹지 않아 스스로 해 먹을지언정 개인식을 챙겼고, 멸균식을 제외하고 타인이 만들어주는 음식을 먹는 경우는 기껏해야 노부오의 간식이나 아키라의 샐러드 정도였다. 덧붙여 먼저 타인에게 닿는 법이 없고, 또 맨 살갗이 닿는 것을 피하는 눈치다. 그뿐이면 다행이겠지만, 날이 갈수록 그는 보호구 따위보다 각종 ‘민간요법’를 맹신하게 됐다. 각종 부적과 특별하다는 육각형 물, 착용하면 좋다는 게르마늄 팔찌와 녹즙 따위에 매년 수백만엔을 지불했다. 당연히 그 중에는 텐노지 신사의 물건도 포함되어 있고. 건강에 좋다는 말만 한다면 당신의 지우개 똥도 만 엔을 주고 살 것이다! (그런 식으로 지갑을 불린 학생이 적지 않기도 하다.) : 하나 기이한 것은, 그가 약기운에 조는 일이 허다한데도 홀로 남은 환경에선 결코 잠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드러진 샹들리에, 미완의 ‘위령 미사곡’ : : 그의 ‘예정된 유작’으로 알려진 위령 미사곡은 여전히 완성되지 않아 665장을 돌파했다. 다년간에 걸친 끝에 완성까지 단 한 장만을 남겨놓고 있으나, 그 마지막 한 장은 각종 이유로 아이토의 손에서 매번 불태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하여 그의 죽음이 유예되었다. 최소한 ‘그’들은 그렇게 믿는다. :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그는 미쳤어! 유작이 완성되기 전에 죽을까 봐 저렇게 독하게 자길 관리하다니! 진정한 천재야! 근데, 왜 아이돌이 된 거지?”
ㅡ 666 : : 어느 날 SNS 등장한 익명의 천재 작곡가. : … 지만, 그가 노노카에와라는 것은 알만한 사람은 아는 이야기다. 그야 그의 서툰 ‘전자기기 다루기’ 실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인지라 주변에 곧잘 도움을 구했으니까! ‘슈레이메나’의 소유로 내놓지 않을 곡들이 이 이름으로 제작되었다. 초등부 시절 아이토에게, 탄에게, 카즈미에게 써주었던 곡들은 모두 ‘666’의 몫이 된 것이다. 그저 그런 용도다.
“모든 색은 그림자와 반사가 있기에 보여. 그러니 나는 완전한 빛 속에 숨을 테야. 어둠(죽음)이 나를 찾아내지 못하도록.”